북극권의 죽지않는 ‘좀비 화재’…지구 숨통을 조여온다

2012년 6월, 항공기에서 바라본 미국 알래스카의 ‘툰드라’ 지대에서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수백m 상공까지 치솟은 연기는 연막탄을 터뜨린 듯 지표면 대부분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한다. 북극 근처의 초원인 툰드라는 기온이 영하 30도까지도 내려간다. 식생 환경이 좋지 않아 주로 이끼가 살고, 큰불을 만들 거대한 나무도 없다. 무엇보다 북극권 산불 대부분은 벼락 때문에 시작되는데, 벼락 없이도 불이 나 크게 번지는 경우가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생기고 있다. 여러모로 이상한 일이다. 북극권의 정체불명 화재에 대한 실마리가 올해 들어 풀렸다. 단초는 한 장의 사진이다. 지난 5월 유럽의 과학연구기구 ‘코페르니쿠스 대기 모니터링 서비스(CAMS)’ 소속의 선임과학자인 마크 패링턴 박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위성이 포착한 시베리아 지면의 열 감지 사진을 살펴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분명 산불이 현재 없는 곳인데, 땅 아래에서 뜨거운 열원이 나타난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의문을 해결할 계기는 간단한 기록 대조에서 나왔다. 지난해 남한 면적의 절반을 태우며 기록적으로 번졌던 시베리아 화재 지역과 올해 위성 사진에서 열을 내뿜는 것으로 표시된 지역이 일치했던 것이다. 우연일지 몰랐지만 비슷한 현상이 그 뒤 잇달아 확인됐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자유대 연구진이 2005년부터 기록된 미국 알래스카 산불을 분석했는데, 큰불이 일어난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불이 또 나는 경우가 빈번하게 관찰됐다. 미국 ‘알래스카 화재과학 컨소시엄’ 소속 과학자들도 2004년, 2005년, 2015년에 알래스카에서 큰 산불이 발생한 뒤 이듬해 봄에 산불이 자주 났다는 보고를 내놨다. 과학계에선 이 같은 연구를 토대로 ‘좀비 화재(Zombie Fires)’라는 새 개념을 제시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존재인 좀비를 빗댄 작명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불꽃이 사실은 땅속에 숨어 살아남았다가 다시 등장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꽃이 땅속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 지구물리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툰드라를 중심으로 한 북극권에 산불이 나면 지면에선 진화가 돼도 불꽃 일부는 땅 밑 수십㎝부터 지층처럼 매장된 ‘토탄(土炭·peat)’ 속으로 파고든다. 토탄은 죽은 식물이 줄기 같은 일부 모습을 유지한 채 진흙과 섞인 것인데, 석탄의 한 종류이다. 불꽃은 토탄을 연료 삼아 땅속에서 겨우내 숨을 죽이며 은신한다. 그러다 봄에 기온이 올라 토양이 건조해지면 지면으로 머리를 내밀고 산불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좀비 화재는 산불 시작 시기를 앞당긴다. 북극 산불은 보통 5월부터 발생해 번개가 많이 치는 6월에 급격히 증가한다. 그런데 좀비 화재는 눈이 걷혀 땅이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봄, 4월이면 시작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좀비 화재가 생기면 토탄이 환경을 공격하는 ‘악당’으로 변한다. 불길과 본격적으로 접촉한 토탄은 내부에 포함된 유기물을 활활 태우며 땔감이 된다. 탄소를 대기로 토해내는 것인데, 북극권 산불 때 방출되는 탄소의 최대 90%가 토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과학계는 분석한다. 땅 위의 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탄소의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 큰 나무가 없는 벌판인 툰드라에서의 화재가 오히려 탄소를 마구 내뿜는 것이다. 올해 북극 산불로 인해 방출된 이산화탄소량을 보면 이런 걱정이 현실화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CAMS에 따르면 올해 1~8월 북극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44Mt(메가톤)이다.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 181Mt이었던 배출량을 8개월 만에 30%나 초과했다.

현재 북극에서는 지면을 바짝 말려 더 많은 좀비 화재를 불러들일 수 있는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 과학계가 운영하는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시베리아의 6월 기온은 1981~2010년 평균치보다 5도나 높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북극의 온난화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2배 빠르다.

토탄층이 불타면 그 아래 ‘영구동토층’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1년 내내 꽁꽁 얼어 있는 영구동토층에는 메탄이 다량 저장돼 있는데, 메탄은 온난화 능력이 이산화탄소의 30배에 이르는 데다 가연성이 있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영구동토층의 메탄이 산불의 연소를 촉진하고, 열기 때문에 영구동토층이 추가로 녹으면서 메탄이 더 나와 산불 발생을 부채질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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